점점 화려해지는 다양한 게임들. 쉽게 한 게임에 정착하지 않고 이 게임 저 게임 옮겨다니면서 플레이 하곤 한다. 지금은 플레이하기 어려운 그 때 그 시절 게임들이 문득 그리워지는 가을이다. 지금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엄마에게 꾸중을 들으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있곤 했다. 자주 회자되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들을 모아봤다. 90년대 초반 추억 공감, 엄마한테 혼나가며 했던 게임들!
■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친척 오빠네 집에 가면 늘 있던 게임,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보통 줄여서 어쩐지 저녁이라고 불렸다. 동명의 만화책이 원작이며 권당 10만 부를 돌파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작가가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신인공모전에 입상해 데뷔를 하게 돼 화제를 모았었다. 지존고의 전설로 불리는 일진 짱 남궁건이 북예고로 전학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룬 만화책이다.
게임 버전은 캐릭터가 앞으로 가면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벨트 스크롤 액션으로 제작됐다. 매일 고인돌과 대항해시대2를 즐기던 나에게 신세계로 다가왔던 게임. 격투 게임은 오락실에서만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플레이어는 남궁건에게 덤비는 깡패들과 싸우면 된다. 보스전이 아닌 이상 일 대 다수의 결투를 하게 된다. 물론 남궁건은 지존고의 전설이므로 쉽게 당하지 않는다.
적을 쓰러뜨리고 경험치를 모아 스테이터스를 올린다는 참신한 발상의 게임이다. 테크닉을 올리지 않으면 기본 기술도 없는 상태로 게임을 해야하기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무조건 테크닉을 하나 올렸다. 일부 캐릭터는 체력이 모두 달아도 땅바닥에 닿기 전까지 살아있는 근성모드가 있어 경험치를 강제로 모으기 굉장히 좋았다. 벽을 이용한 콤보나 다운 콤보, 공중 콤보를 잘 구현해 즐기는 맛이 있었다. 후속작으로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2 : 스톰이 발매됐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 썸바리 헤업 미! 버츄어캅2
쓸모없는 인질이 등장하는 게임 버츄어캅2. 언니와 용돈을 조금씩 모아 동네 마트에서 CD를 샀었다. 1인용은 마우스로, 2인용은 키보드로 플레이했었다. 빠른 커서 이동이 필요한 총 게임이다보니 키보드 플레이는 아무래도 마우스에 비해 조작이 불편한 감이 있었는데, 덕분에 2p는 늘 내 차지였다.
도심과 배, 지하철 중 하나의 스테이지를 선택해 플레이할 수 있으며, 한 스테이지를 모두 클리어하면 다른 스테이지를 플레이할 수 있다. 각 스테이지 아래에는 난이도가 영어로 적혀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유치원생이었던 난 그냥 가고싶은 곳을 선택했었다.
시점은 자동으로 이동되며, 마우스로 화면에 등장하는 적을 골라 공격하기만 하면 된다. 주인공은 경찰이므로 적의 머리를 쏴 죽이는 것보다 손을 쏴 무기를 잃게 하는 것이 고득점을 올리는 비법이다. 가끔 적이 인질을 앞세우는데, 이 때 인질이 외치는 '썸바리 헤업 미(Somebody Help Me!)'는 'Somebody Shoot me!'로 들리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 낚시를 떠나요♬ 낚시광!
유치원생~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 즐겨했던 낚시광. 이모에게 선물받은 디스켓을 컴퓨터에 넣어야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모부가 게임하는 걸 보는데 강 위에 야광색 찌(케미 라이트)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하고 싶어서 졸라서 얻은 게임이었다. 까만 강 위에 떠있는 야광찌는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낚시를 좋아하는 중장년 층을 타겟으로 만든 게임이다보니 어린 나에게 그렇게 흥미로운 게임은 아니었다. 미끼를 고르거나 떡밥을 조합해 던지고 물고기가 물길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실제 낚시만큼은 아니지만 이 기다림의 시간은 꽤 긴 편이었다.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게임들만 하다가 오래 기다려야하는 낚시 게임을 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게임을 처음 실행하면 사무실에서 산처럼 쌓인 서류 더미에 파묻혀있는 남자의 모습이다. 실제로 당시 직장을 다니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업무용 컴퓨터로 낚시광을 즐긴 직장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 바운스볼 전에 이 게임이 있었다! 범피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는 게임으로 인기가 있는 모바일 게임 바운스볼! 바운스볼 전에 우리는 범피를 즐겼었다. 92년 프랑스에서 만든 PC 게임이다. 원제는 Bumpy's Arcade Fantasy(범피의 아케이드 모험)지만 일반적으로 범피라 불렀다.
정해져 있는 맵에서 빨간 공이 통통거리면서 적들을 피해 과일과 사탕, 과자를 먹고 출구로 나가는 게임이다. 한 번에 한 칸씩만 움직일 수 있다. 초반에는 매우 간단하지만 뒤로 갈수록 사라지는 발판, 미끄러져서 위에 올라갈 수 없는 발판, 꿀이 있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발판, 한 쪽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발판 등 다양한 발판이 등장하면서 어려워진다.
모든 아이템을 먹어야 출구가 생성되므로, 잘못하면 출구로 가는 길이 봉쇄된다. 역시 유치원생이던 시절 했었기 때문에 끝까지 깬 적은 없다. 지금 플레이한다면 엔딩을 볼 자신이 조금은 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컴퓨터가 막 보급되던 시절, 엄마한테 혼나가면서 했던 게임들을 모아봤다. 대항해시대2, 라이온킹, 페르시아의 왕자처럼 자주 추억되는 게임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가 그 시절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들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촌스러운 그래픽이지만 게임성만큼은 지지 않았다. 상업성 게임이 판치는 요즘 게임들, 10년 20년 뒤 떠올릴 게임이 출시되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김지혜 기자(kjh@mo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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